[스타트업/기업자문,비즈니스와 법률] #1. 문 앞의 야만인들과 상법 개정
안녕하세요. 변승규 변호사입니다.
2025년 7월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늘날까지도 MBA과정에서 교재로 활용되는 경영 분야의 고전『문 앞의 야만인들』을 사례로 삼아 이번 상법 개정의 의미를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1988년 RJR 나비스코의 인수 사례
『문 앞의 야만인들(Barbarians at the Gate)』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였던 존 헬리어와 브라이언 버로가 쓴 논픽션 책으로 ‘1988년 RJR 나비스코의 인수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RJR 나비스코는 오레오와 리츠로 유명한 미국의 식품회사 나비스코와 담배회사 RJR 레이놀즈가 합병한 대기업이었습니다. 당시 RJR 나비스코의 CEO였던 로스 존슨은 회사 주가가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투자은행과 손잡고 RJR 나비스코를 LBO(차입매수, Leveraged Buyout) 방식으로 인수를 시도하였습니다. 경영자가 주도하는 인수였기에 MBO(경영자매수, Management Buyout)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소식을 들은 사모 펀드들(KKR, 포스트먼 리틀, 퍼스트 보스턴 그룹 등)이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로스 존슨 측과 각축을 벌이게 됩니다. ‘문 앞의 야만인들’은 로마 시대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외부로부터의 위협, 침입자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KKR 등의 사모 펀드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RJR 나비스코 이사회는 이들 잠재적 매수인들의 제안을 검토하여, 최종 매수인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사들은 대부분 로스 존슨의 친구들로서 사실상 로스 존슨이 이사회로 초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인수전에서 로스 존슨이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예상하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RJR 나비스코 이사들은 매수인 결정 과정에서 ‘이사들 본인이 소송을 당할 위험’을 가장 우려하여, 어떤 제안이 회사 또는 주주들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지 보다는 어떤 제안이 자신들의 법적 책임 부담 가능성이 적은지를 기준으로 인수안을 평가했습니다. 결국 이사회는 로스 존슨이 아닌 KKR을 매수인으로 선정하였는데, 이사들이 법적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옵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KKR의 인수 이후 RJR 나비스코는 LBO의 부작용으로 막대한 부채 부담에 시달렸고, 비용 절감 및 부채 상환에 집중해야 했습니다. 반면, 경쟁사였던 필립 모리스는 재정적 여유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M&A와 대규모 마케팅을 진행하였고, RJR 나비스코는 필립 모리스와의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KKR도 RJR 나비스코를 재매각했는데, 거의 수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상법 개정과 이사회 책임의 제도화
2025년 7월 상법 개정으로 1)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 외에 주주가 추가되고, 2)상장회사의 사외이사의 명칭이 독립이사로 변경되었습니다. 3)상장회사의 사외이사 의무 선임 비율 또한 1/4에서 1/3로 상향 조정되었습니다.
종래에도 이사가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담하였고, 회사의 이익의 보호를 통해 주주의 이익도 간접적으로 보호되었으므로, 이번 상법 개정으로 완전히 새로운 법리가 도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의 구체적 의미, 범위까지 개정 상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명확히 확립되기 위해서는 실무 및 판례의 축적을 기다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들이 주주로부터 소송을 당할 위험이 커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 국내 기업의 이사들도 대주주나 대표이사의 이익만을 위하여 이사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간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이사회의 기능과 이사들의 태도에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시에 이사들이 책임 회피를 우선하지 않도록 하는 경영 환경의 조성 역시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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