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및 분쟁해결,소송실무 법률가이드] #30. 의료인의 진료행위와 강제추행(強制醜行)의 경계 - 환자의 내밀한 신체 부위에 대한 의료인의 접촉행위에 관한 대법원 판단 기준 -

안녕하세요. 남현 변호사입니다.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접촉 부위가 가슴, 치골(恥骨) 부위, 음부 등 이른바 '내밀한 신체 부위'에 해당하는 경우, 그것이 정당한 진료행위인지 아니면 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추행(醜行)인지 실무상 쉽지 않은 쟁점이 됩니다. 이 문제는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에 대한 존중과 환자의 인권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영역으로, 어느 한쪽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환자의 내밀한 신체 부위를 대상으로 하는 진단 및 치료 과정에서 이루어진 의료인의 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기준을 명시적으로 설시한 대법원 2025. 6. 5. 선고 2022도9676 판결(이하 ‘대상판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대상판결은 의료인의 성범죄 사건을 다룸에 있어 중요한 참고가 될 판결로, 이번 글에서는 그 사안과 판단 기준, 실무상 시사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 대상판결의 개요

피고인은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로, 교통사고 치료를 위해 방문한 여성 환자의 물리치료를 마친 후 소화불량을 진찰한다는 명목으로 환자의 가슴 위쪽과 옆쪽을 수회 누르고, 치골 부위를 촉진하다가 음부를 수회 눌렀습니다. 이에 환자가 강제추행 피해를 주장하였고 검사는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으로 공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제1심은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치골 부위 촉진은 한의학적으로 인정되는 진료 방법이고, 사전 설명이나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추행의 고의를 추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원심은 이를 파기하고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환자의 내밀한 신체 부위에 대한 피고인의 촉진행위를 추행으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추행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2. 의료인의 진료행위와 추행 구별의 어려움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대법원 2002. 4. 26. 선고 2001도2417 판결 등). 

강제추행죄의 고의는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별도의 목적 없이, 추행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다는 미필적 인식만으로 충분합니다.

의료 영역에서 환자의 신체 접촉이 직업적으로 불가피하기 때문에 정당한 진료행위와 추행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의학적 적응성(適應性)이 인정되는 행위를 환자의 주관적 감정만으로 추행이라 단정하면 의료인에 대한 억울한 처벌의 위험이 있고, 반대로 의료인이 가진 전문 지식과 우월적 지위를 방패 삼아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진료행위로 둔갑시키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존 판례에서는 의학적 적응성과 의술적 적절성이 주된 판단 기준이었고, 사전 설명·환자 동의·간호사 입회 등 절차적 요소는 부가적으로만 고려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2017. 9. 26. 선고 2017도8304 판결처럼 의학적 적응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사전 설명과 환자의 선택 기회 부여를 강조한 사례가 등장하는 등 점차 절차적 측면의 비중이 높아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 3. 대상판결이 제시한 판단 기준

대상판결은 내밀한 신체 부위에 대한 접촉행위가 추행인지를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일반인의 관점에서 아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설시하였습니다.

[대상판결이 제시한 추행 고려요소]

  • 환자의 성별, 연령, 의사
  • 해당 행위에 이른 경위와 과정
  • 접촉 대상이 된 신체 부위의 위치와 특성
  •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대한 진단·치료의 필요성 또는 위급성
  • 질병 등의 진단이나 증상 완화·호전 등과 해당 행위의 연관성 또는 밀접성
  •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의 객관적 상황
  • 해당 의학 분야에서 객관적·일반적으로 실천되는 진료행위로서 시술 수단과 방법이 상당하였는지
  • 사전에 환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에게 진료 내용과 내밀한 신체 부위에 대한 접촉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였는지


주목할 점은, '사전에 환자에게 진료 내용과 내밀한 신체 부위 접촉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였는지'가 의학적 적응성 관련 요소와 대등한 고려요소로 명시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의학적 적응성만 인정되면 그 밖의 절차적 측면은 환자를 배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진료로 볼 수 있을 뿐이라는 기존의 시각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입니다.


▶ 4. 대상판결의 결론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유죄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에 진료행위와 추행의 구분 및 추행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보아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 환자는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를 목적으로 목·허리 통증 등에 대한 물리치료를 종료한 상태인 점
  • 소화불량과 치골 부위의 연관성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점
  • 여성의 가슴·치골 부위를 누르고 마사지하는 방법이 한의학에서 객관적·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진료행위로 보기 어려운 점
  • 사전에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진료기록부에도 관련 기재가 없었던 점


 5. 실무상 시사점

첫째, 내밀한 신체 부위 진료에서 의학적 적응성만으로 진료행위의 정당성이 완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전 설명과 환자 동의가 추행 여부 판단의 독자적 고려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둘째, 의료인 성범죄 사건의 변호에 있어 의학적 적응성 외에도 사전 설명·동의 절차의 이행 여부, 간호사 등 보조인의 입회 여부, 진료기록의 기재 여부 등 절차적 측면도 실질적으로 다투어야 합니다. 반대로 이러한 절차가 온전히 이행된 경우에는 피고인 측에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의료계 차원에서 내밀한 신체 부위 진료 시 설명 절차, 동의 획득, 제3자 입회(샤프롱 제도) 등에 관한 구체적 기준의 정비가 시급합니다. 이는 환자 보호뿐 아니라 정당한 진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의 보호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대상판결은 환자의 내밀한 신체 부위를 대상으로 하는 진단·치료 과정에서 의료인의 접촉행위가 추행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구체적 방법과 기준을 처음으로 명시하였습니다. 기존의 의학적 적응성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의료인의 사전 설명과 환자의 동의라는 절차적 측면을 추행 판단의 대등한 고려요소로 편입시킨 것은 의미 있는 진전입니다. 향후 의료인 성범죄 사건의 수사·기소 및 변론에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참고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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