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기업자문,비즈니스와 법률] #4. 스튜디오 지브리와 회사법

안녕하세요. 변승규 변호사입니다.

Chat GPT로 인물사진을 지브리 스타일의 캐릭터로 바꾸는 것이 유행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Chat GPT의 놀라운 성능만큼이나, 스튜디오 지브리의 세계적인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지브리의 천재들』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부터, 「이웃집 토토로」, 「추억은 방울방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작품들의 제작 과정, 지브리를 이끈 두 천재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 책입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이사이자 프로듀서로서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스즈키 도시오가 썼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꿈과 환상을 표현하는 창작집단이지만, 하나의 회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회사법적인 이슈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본 회사법은 우리나라 회사법과 유사하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참고할 만한 것들입니다.


휴면회사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설립

스튜디오 지브리는 애니메이션 전문 잡지 아니메쥬를 발간하던 도쿠마쇼텐의 자회사로 설립되었습니다. 저자 스즈키 도시오도 도쿠마쇼텐 소속으로 아니메쥬의 부편집장을 거쳐 편집장으로 일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처음 지브리 스튜디오를 설립하기 위하여 ‘주식회사 만드는 방법’이라는 책을 사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총무부에서 휴면회사가 있으니 그 회사를 사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천평의 기와집」이라는 영화를 만들 때 사용했던 ‘기와집 기획’이란 회사였는데, 당시 3,600만 엔 정도의 차입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채무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스튜디오 지브리는 출발했다고 합니다.


왜 도쿠마쇼텐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휴면회사를 사용했을까요? 

과거 한국과 일본에는 주식회사의 최소 자본금 규제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최소 자본금이 5,000만 원이었고, 일본의 경우 1,000만 엔이었습니다. 즉, 한국에서 누군가 회사를 설립한다면, 최소 5,000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5,000만 원은 오늘날에도 큰 돈이지만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예전에는 더 큰 돈이었습니다. 그 정도 돈은 있어야 유한책임을 지는 주식회사를 설립할 자격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법인을 설립하는 절차도 까다로웠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과 일본 모두 최소 자본금 규제가 폐지되어서 이론적으로는 한국에서는 자본금 100원, 일본에서는 자본금 1엔으로도 주식회사 설립이 가능합니다. 물론, 실무적인 이유로 한국에서는 최소 자본금이 몇백만 원 이상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금융업처럼 인허가나 등록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에는 상법 외에 다른 법에서 자본금 규제를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인 설립 절차도 간단해져서, 주식회사를 설립하기 위하여 책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법무법인에 의뢰하면, 그리 크지 않은 비용으로 며칠 만에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과거 회사의 자본금 규제가 있고, 회사 설립 절차가 복잡하던 시절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사례처럼 휴면회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최소 자본금 규제가 있던 시절에는 휴면회사를 활용하면 5,000만 원의 최소 자본금을 새로 납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회사 설립에 필요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므로 시간과 비용이 절약된다는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금 규제가 없어지고, 회사 설립 절차가 간단해짐에 따라서 휴면회사 활용의 장점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굳이 휴면회사를 활용하지 않아도 작은 자본금과 비용으로 빠르게 권리관계가 깨끗한 신설 회사를 설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붉은 돼지」와 일본 항공의 정관 개정

책은 화려한 공중 전투 장면으로 유명한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제작 비하인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항공(Japan Airlines)의 투자로 만들어진 「붉은 돼지」의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돼지로 변한 비행기 파일럿인데, 주인공이 돼지라는 것부터 보수적인 일본항공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는 일본항공의 기내 상영용 단편으로 출발한 기획이었으나, 분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극장용 장편 영화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기내 상영용 단편으로 출발한 작품이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면서 투자자인 일본항공 내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내에서 상영할 단편영화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극장 개봉작에 투자한다면 일본항공의 정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일본항공의 사장이 결단을 해서 「붉은 돼지」가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왜 기내 상영용 단편영화에 투자하는 것과 달리 극장 개봉작에 투자하면 회사 정관을 바꾸어야 할까요?

정관은 회사의 기본적 규칙을 정한 규정입니다. 정관에는 다양한 규정이 있지만 당시 문제된 것은 정관의 목적 규정일 것입니다. 정관의 목적 규정이란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을 정하는 규정입니다. 회사는 원칙적으로 정관의 목적 규정에 포함된 사업만을 해야 합니다. 일본항공 정관의 목적 규정에는 항공업 등 일본항공이 영위하는 사업들이 열거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기내에서 상영할 단편영화에 투자하는 것이라면 승객들에게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므로 항공업의 일부 또는 그에 부수되는 사업 정도로 볼 수 있어서, 정관의 변경이 불필요할 것입니다. 반면, 극장용 상업 영화에 투자하는 것은 항공업과 무관한 별개의 사업이므로, 영화 관련 투자업을 정관의 목적에 추가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사장의 결단이 필요했다고 말했지만, 정관의 변경은 사장의 결단만으로는 할 수 없고,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합니다. 상장회사의 주주총회를 개최하기 위한 절차, 기간 등까지 고려하면, 일본항공 내에서 큰 문제가 될 만한 일입니다.


맺음말

회사법이란 단어는 스튜디오 지브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도『지브리의 천재들』이란 책에서 회사법적 이슈를 발견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재라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과 회사가 필요하며, 회사법의 검토도 필요합니다. 천재들이 작품을 창작하고 있을 때, 이들을 돕기 위하여 누군가는 회사의 설립과 정관의 개정과 같은 회사법상 이슈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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