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간 분쟁, 경영권 분쟁 이야기] #1.꼭 알아야 할 기초 – 경영 판단의 원칙이란

안녕하세요, 천준범 변호사입니다. 

주주들 사이의 분쟁들, 회사의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많은 당사자들 사이에서 사건을 다루다 보면 언제나 등장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경영 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이라는 것인데요, 이 용어가 등장하는 스토리는 보통 이렇습니다.

원래 스타트업을 포함한 모든 회사에서 주주들의 권력관계는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어서, 돈을 낸 비율을 의미하는 지분율에 따라서 서열이 명확합니다. 지분율이 곧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 이사를 뽑을 수 있는 힘 =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힘 = 대표이사를 뽑을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이 서열에 따라서 대주주가 원하는 사람이 대표이사가 되고, 이사가 되고, 심지어 감사도 됩니다. 상법에는 지분율이 낮은 소수주주들이 가질 수 있는 이런 저런 권한이 있고, 대표적으로 회사를 감시하는 ‘감사’가 소수주주들 몫이지만, 평소에는 소수주주들도 대주주의 입맛에 맞는 임원진 구성에 별로 딴지를 걸지 않습니다. 소수주주도 결국 회사가 전쟁터에 나가서 ‘돈을 벌어 오기' 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갖춰서 작전을 짜고 전략을 세워서 적을 무찔러야겠죠.

'법’은 기본적으로 이런 회사의 작전과 전략에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축구 심판이 어떤 팀이 골을 넣기 위해 누가 센터링을 올리고 슛을 해야 하는지, 프리킥이나 코너킥은 어떤 선수가 차야 하는지, 후반 몇 분에 어떤 선수를 교체해야 하는지, 그리고 감독이 중요한 순간에 화장실에 가서 자리를 비우더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쉽게 말해, 이것이 ‘경영 판단의 원칙'의 기초입니다.

‘경영자’는 시장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는 큰 원칙입니다. 축구 감독이 일단 임명된 이상 골을 넣기 위해서라면 어떤 전략을 쓰더라도 일단 믿고 맡겨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돈을 못 벌면' 이제 문제가 생깁니다. 패배의 원인을 두고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비난이 빗발칩니다. 처음부터 전체적인 작전이 잘못되었다, 세부적으로 이런 저런 전략이 잘못되었다, 장군(임원)을 잘못 썼다는 등 다양한 주장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경영진의 사생활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주주간 분쟁, 경영권 분쟁의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라면 국가대표 축구 감독 바꾸듯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현실은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타트업은 물론 중소, 중견기업이나 대기업까지도 대주주가 ‘직접' 경영을 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사실 거의 전부입니다. 주식회사의 특징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겠지만, 실상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고 상법 교과서 속에서만 있는 말입니다. 

대주주가 직접 경영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대주주 개인이 대표이사로 직접 취임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영을 담당하는 다른 사람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두었으면서도 사실상 그 대주주가 ‘회장’ 또는 ‘의장’과 같은 직책으로 회사의 중요 정책 대부분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통 패배한 경영진을 구성한 것이 대주주이기 때문에, 분쟁의 상황은 보통 소수주주들이 대주주를 공격하고, 대주주는 수비를 하는 양상이 됩니다. 경영진 교체는 곧 대주주의 잘못 인정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대주주가 시도했던 많은 전략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검증을 하고 방어를 하는 지루한 공방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되어도 법은 원칙적으로 이런 공방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첫째, 법이 사업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양쪽의 말을 아무리 자세히 오래 들어도, 사업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누가 옳은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법은 그냥 “당신들이 알아서 하쇼!”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 것, 이것은 국가와 관계없이 법이 취하는 기본 자세입니다.

둘째, 법은 최저 가이드라인일 뿐 무엇이 최선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법은, ‘절대점수제 평가'와 같습니다. 100점 만점에 60점 이런 식으로 최소 조건을 정해 놓고, 그것만 넘으면 합격 처리합니다. 하지만 60점 넘었다고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법이 답을 주지 않고, 줘서도 안되겠죠.

셋째, 우리나라의 법이 ‘가장 적게 개입한다'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기업의 경영에 깊이 개입하는 관리경제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주로 미국을 통해 수입된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자율을 보장하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법은 최소한의 심판 역할만 하라는 것이 우리나라 법의 큰 틀 중 하나입니다.

자, 이제 ‘경영 판단의 원칙'이라는 것이 대주주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세우는 중요한 논리라는 점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소수주주이면서 “경영 판단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면 대주주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수주주는 전혀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있습니다.

상법은 소수주주가 마치 감사처럼 회사의 회계장부를 열어보고(회계장부열람 및 등사청구권), 전문가를 통해 경영을 진단하며(검사인선임권), 심지어는 대주주 또는 대주주 편의 이사를 해임하거나 직무를 정지시키고(이사해임권) 그 대신 소수주주가 원하는 이사나 대표이사를 회사에 앉힐 수 있는(직무집행정지 및 대행자선임청구권) 방법과 절차 - 소수주주를 위한 무기 - 를 여러 가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주간 분쟁, 경영권 분쟁은 이런 상법의 무기를 발포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런 구체적인 무기인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재를 통해 하나하나 실제 사례를 통해 정확히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미리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기에 넣을 화약입니다.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화약이 약하면 적군의 방탄조끼를 뚫을 수 없으니까요.

과연 경영 판단의 원칙의 베일을 뚫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약은 무엇일까요? 

넷플릭스(Netflix)는 모든 직원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면서 “넷플릭스의 이익에 최선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하라.”는 한 마디로 기업 문화를 요약했다고 합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경영진이 회사의 이익에 최선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했는가?”

이 질문에 “No”라고 명확히 답할 수 있으면 있을 수록 소수주주에게 강력한 화약이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 질문에 “Yes”라고 강하게 대답할 수 있으면 있을 수록 강력한 대주주의 방탄 조끼가 됩니다.

그런데 누구든 양심에 손을 얹고 1분만 생각해 보면 스스로 알 수 있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수많은 법적 절차를 통해 회사의 주주간 분쟁 또는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끝나기까지 1년 아니 10년이 흘러갑니다. 경영권 분쟁은 실제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남아 있는 증거와 시간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분명히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도, 제3자인 법원과 검찰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 그 동안 회사의 시간은 그냥 흘러가고 맙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법적 조치를 하지 못해서 시기를 놓쳐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이제 본격적으로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관점에서 각각, 어떤 사례에서 어떤 일이 있을 수 있으며, 어떤 준비를 미리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연재되는 저의 ‘주주간 분쟁, 경영권 분쟁 이야기'가 주주 여러분의 재산과 이익을 지키고 회사를 경영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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